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🤝 한미 협상 막전막후 비화: 대통령실 3실장이 전하는 '을사년' 같았던 협상 고난과 극적 타결의 순간
📜 서론: 대통령실 3실장,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 숨 막혔던 협상의 전말
지난달 29일 **경주 한미 정상회담**을 통해 극적으로 타결되었던 **한미 관세·안보 협상**의 숨 막히는 막전막후 비화가 대통령실 참모들의 입을 통해 공개되었습니다. **강훈식 비서실장**과 **김용범 정책실장**, **위성락 안보실장** 등 대통령실 핵심 3실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협상 전후 상황을 상세히 회고했습니다. 이들이 전한 내용은 협상 시작 단계부터 **'을사년(乙巳年) 같았다'**고 표현될 정도로 **불평등하고 고난도**였으며, **23차례에 걸친 장관급 회담**과 **강경 대치**를 거쳐 마지막 순간 **서로의 배려**로 겨우 결실을 맺을 수 있었던 **외교 사투**의 기록이었습니다.
1. 💣 '을사년'의 악몽: 첫 협상안의 충격과 고난도의 시작
1-1. '기절초풍'할 수준의 미국 측 협상안
관세 협상의 주무를 담당했던 **김용범 정책실장**은 협상의 출발점부터가 **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**이었음을 회상했습니다. 지난 8월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첫 한미 정상회담 이후 미 측이 보내온 협상안에 대해 김 실장은 **"기절초풍이라고 해야 할지, 진짜 말도 안 되는 안이었다"**고 표현하며 당시의 **충격과 당혹감**을 여과 없이 드러냈습니다. 이는 한국이 **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일방적인 요구**가 담겨 있었음을 의미합니다.
1-2. 불평등의 역사적 비유: '올해가 을사년이구나'
김 실장은 협상안을 접하고 **"아, 올해가 을사년(乙巳年)이구나"**라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습니다. 이는 조선이 일본에 외교권을 빼앗긴 **'을사늑약'이 체결된 1905년도 을사년**이었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**강렬한 역사적 비유**였습니다. 협상 시작 단계부터 그 **불평등의 정도가 심각**했고, 우리나라의 **국익을 현저히 해칠 수 있는 고난도 협상**이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입니다. **"완전 최악이었다"**는 그의 평가는 당시 상황의 절박함을 대변합니다.
2. ⚔️ 끝까지 강경 대치: '더는 양보 안 된다'는 마지노선
2-1. 트럼프 방한 임박과 미국의 압박
협상이 난항을 겪는 상황은 미국 측의 **극심한 압박**으로 이어졌습니다. 김 실장은 **"미국 측도 (도널드 트럼프) 대통령이 (한국에) 오는데 우리와 입장이 안 좁혀지니 엄청 화를 냈고, 그런 것들이 우리에게도 전달됐다"**고 당시의 험악했던 분위기를 떠올렸습니다.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**조기 타결을 원하는 미 측**과 **국익 수호를 위해 양보할 수 없는 한 측** 간의 **긴장감이 극대화**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.
2-2. 23차례의 장관급 회담과 강경 대치
협상팀은 이러한 강경한 압박 속에서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. 김 실장은 **"적어도 감내가 가능한 안을 위해 끝까지 사투했고 강경하게 마지막까지 대치했다"**고 밝혔습니다. 협상 준비 기간 동안 **"23차례나 장관급 회담이 있었다"**는 강훈식 비서실장의 언급은 양국 간의 협의가 얼마나 **치열하고 지난한 과정**을 거쳤는지 보여줍니다. 한국 협상팀은 **"'더는 양보가 안 된다'는 우리의 선(마지노선)**이 있었다"고 단호하게 전하며, 국익을 지키기 위한 **결사적인 노력**을 했음을 강조했습니다.
한미 협상 과정의 핵심 요소
- 총 회담 횟수: 23차례의 장관급 회담
- 초기 분위기: 미국 측의 일방적이고 불평등한 요구 (김용범 실장, '을사년' 비유)
- 한국의 자세: 끝까지 사투하고 강경 대치, '더는 양보 안 된다'는 선 견지
- 최종 결정권자: 대통령의 완강한 입장이 최종 마지노선 역할 (강훈식 실장)
3. 😮 긴장 이완: 마지막 순간의 배려와 극적 타결 배경
3-1. 긴장감이 극대화되었던 타결 직전
협상 타결 직전, 현장의 **긴장감은 극에 달했습니다.** 강훈식 실장은 **"긴장감이 극대화돼있었고 이견은 좁혀지지 않은 상태였다"**고 당시 상황을 묘사했습니다. 양국 정상회담 직전까지 **합의점을 찾지 못하면서** 협상이 결렬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팽배했던 것으로 보입니다. 그는 **"끝나고 긴장이 탁 풀렸다"**고 소회를 밝히며, 최종 타결이 주는 **안도감**을 표현했습니다.
3-2. '서로 배려하고 물러선' 극적 타결의 배경
**위성락 안보실장**은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배경에 대해 **"주요 플레이어들이 마지막 순간에 입장을 재고하고 상대를 배려해 서로가 물러섰다"**고 설명했습니다. 이는 **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양국의 정치적 의지**와 더불어, 실무 협상가들을 넘어선 **최고위층의 결단과 외교적 묘수**가 작용한 결과임을 시사합니다. 결국 **최종적인 양보와 배려**가 협상의 물꼬를 튼 결정적인 요인이었던 것입니다.
4. 👑 대통령의 리더십과 참모들의 지혜: 성공적인 대처
4-1. 대통령실 참모들의 역할 분담
강 실장은 협상 준비 과정에서 **참모들의 역할 분담**에 대해서도 언급했습니다. **"정책·안보실장은 주로 진척이 있는 것에 대해 (내부) 설득을 하는 편이었고, 제가 제일 완강한 입장에 서 있었다"**고 전했습니다. 이는 실무를 맡은 김 실장과 위 실장이 **합의의 가능성**을 타진하는 역할을 하는 동안, 강 실장 본인이 **가장 보수적이고 신중한 입장**에서 협상의 마지노선을 지키는 역할을 했음을 시사합니다. **참모들의 전문성과 유연성**이 조화를 이루었던 것입니다.
4-2. 협상 성공의 핵심: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
그러나 강 실장은 이러한 참모들의 역할보다 더 중요한 요소를 지목했습니다. 그는 **"더 완강한 건 대통령이었다"**고 밝히며, **이재명 대통령**이 협상 전반에 걸쳐 **최종적인 마지노선**을 설정하고 국익을 지켜냈던 **강력한 의지**가 협상 성공의 근본적인 동력이었음을 강조했습니다. 위 실장 역시 **"결과적으로는 잘 됐다"**고 평가하며, **"첫째로 대통령이 대처를 잘했고, 참모들도 지혜를 모아 대처 방안을 잘 궁리했다"**고 덧붙이며 **대통령의 리더십**을 높이 평가했습니다.
5. 📡 '조인트 팩트시트'의 공개: 세부 협의의 지속
5-1. 타결 발표 시점의 외교적 고려
이 영상은 한미 관세·안보 협상 결과를 담은 **'조인트 팩트시트'(공동 설명자료)**가 발표된 뒤에야 이재명 대통령의 유튜브 채널에 게시되었습니다. 이는 양국이 **정상회담에서 큰 틀의 합의**를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, **세부 협의를 이어왔던 점**이 고려된 것으로 보입니다. **외교 협상의 민감성**을 고려하여, **최종적인 정리**가 끝난 뒤에야 막전막후 이야기를 공개하는 **신중한 태도**를 취한 것입니다.
5-2. 고난의 외교를 통해 얻은 교훈
대통령실 3실장이 공개한 후일담은 **국제 외교와 협상**이 얼마나 **복잡하고 치열한 과정**을 거치는지 여실히 보여줍니다. 특히 **주요 동맹국과의 협상**이라 할지라도 **국익이 충돌**하는 지점에서는 **'을사년'이라는 극한의 비유**를 사용할 만큼의 **강경한 대립**이 불가피하며, **최고 리더의 원칙과 참모들의 지혜**가 결합될 때 비로소 **승리**를 얻을 수 있음을 시사하는 중요한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.
✨ 결론: 국익 수호의 지난한 투쟁과 외교의 승리
조인트 팩트시트로 포장된 **한미 협상의 타결** 뒤에는 **강훈식, 김용범, 위성락 세 실장**을 비롯한 수많은 외교 실무진의 **피 말리는 사투와 23차례의 회담**이 숨어 있었습니다. 협상 초기의 **불평등한 요구**에 굴하지 않고 **'더는 양보할 수 없다'는 국익의 마지노선**을 지켜낸 것은 **대통령의 뚝심 있는 리더십**과 **참모들의 헌신적인 노력** 덕분이었습니다. 이번 후일담은 **성공적인 외교의 이면**을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**정부의 대처에 대한 신뢰**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.